한국어를 못 들은 척.....


어제 마카티를 갔다가 집에 오는 길 (우리집은 퀘죤임-_-;)

버스에서 내려서 지프니를 한번 더 타야 우리집 빌리지 게이트앞에서 내리기에, 지프니를 탔다. 손님들이 지프니에 다 차야 출발하는 특성상 기다리고 있었는데, 평소에 나는 지프니나 FX를 타면 앞자리...그러니까 운전기사 옆에 앉는 걸 좋아해서 그 날도 지프니 운전기사 옆자리에 앉아있었다. 지프니에 손님을 꽉꽉 채우고 (내가 보기엔 더 이상 앉을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을 어떻게든 태움), 내가 앉아있는 이인용 보조석 자리에도 (원래는 한명이 타야 적당한) 어떤 아저씨 한명이 탔는데 나를 힐끔 보더니 [안녕하세요] 비스무리한 말을 조그맣게 중얼거린다. 필리핀 사람처럼 생기지는 않았고, 중국인이나 일본인같아 보였는데 암튼.

'응? 뭐지? 방금 안녕하세요 라고 한 건가?' 라고 생각하며 그냥 쌩까고 멍때렸다.   

손님이 다 차고, 지프니는 출발-
조금 지나니 또 [안녕하세요] 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림.

'아 뭐야, 어쩌라는 거야' 라고 생각하며 그냥 쌩까고 또 멍때렸다. 못 들은 척 하고 있음 못 알아들은 줄 알겠지 뭐.

집에 거의 다 와서 내리려는데, 뒷자석에 어떤 아주머니가 지프니 운전기사에게 길을 묻는다. 내 옆자리 아저씨는 뒤를 돌아보며 그 아줌마한테 길을 설명해줌. 따갈로그로 말하는데 뭔가 유창하진 않고 말투가 굉장히 부드러움.

게이트 근처에 도착했길래 [익스큐즈미] 하면서 내리니까 또 [안녕하세요] 이런다.

그 다음 나는 어떻게 했을까?

[네, 안녕히 계세요] 라고 했다면 굉장히 아름다운 광경이었겠지만-_-; 그냥 쌩까고 내 갈 길 갔다. 지프니는 출발.



이 이야기를 친언니에게 하면 [그냥 인사받아주지 뭘 그리 싸가지없이 까탈스럽게 쌩까냐] 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. 근데 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 하는 것도 싫고, 지프니에서 위험스럽게 [나 한국인이오, 돈 많은 외국인이오] 라고 광고 하는 것도 싫다. 그로 인해 시선이 집중되는 건 더더욱 싫고.

내가 그 아저씨의 [안녕하세요] 인사에 [하이] 라고 대답했다면 그 결과야 뻔하지 뭐.

[한국사람이예요?]
[한국 어디에서 왔어요?]
[나도 한국친구 있어요.]
[어디 살아요?]
[필리핀에 뭐 하러 왔어요?]
[필리핀에서 학교 다녀요?]
[학교 어디?]
[전공은?]
[필리핀이 좋아요?]
[남자친구 있어요?]
[한국남자친구?]
[왜 필리핀남자 안 사겨요?]



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나도 처음부터 한국어를 모르는 척 했던 건 아님.




by 기린 | 2009/04/23 07:16 | wOw 필리핀 | 트랙백 | 덧글(8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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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emjai at 2009/04/25 06:47
[한국사람이에요?]
[한국 어디에서 왔어요?]
[오, 나도 한국친구 있어요. 배용준이라고]
그때 갑자기 배용준이 지프니에 탑승하며 인사한다.
[어이 친구]
[어이 친구, 이게 필리핀에서 유명한 지프니라는 거야. 나도 오늘 처음 타봐]
[그렇군 친구. 이거 재미있군. 우리 이거 타봤으니 이제 내릴까]
그들은 뒤따라오던 마이바흐를 타고 유유히 멀어저 간다.

데킬라 서른잔 원샷 후 읽으면 그럴수도 있겠구나 하는 필리핀 대반전 드라마...


...



전.. 와따시와 니혼진 데쓰 하고 살포시 밀어줍니다.
간혹 혼또니 하고 답해오면 수화 모드로 급전환.
Commented by 기린 at 2009/04/26 02:05
[와따시와 니혼진 데쓰]
[오? 아 유 자파니스?]

위의 질문 반복..............................-_-
ㅋㅋㅋㅋㅋ
ㅋㅋㅋㅋㅋ
ㅋㅋㅋㅋㅋ

진짜 저런 질문 백번을 들었을 듯....휴;
Commented by 두리미 at 2009/04/28 10:29
어이쿠, 이글루스 오랜만에 들리네요.:D
전 길가다가 도인들한테 잘 잡히는 편이거든요. 평소에는 무뚝뚝하게 대답을 하거나 모르는 척하면서 지나가는데 끊질기게 따라오더라고요.- ㅂ-;; 그 날은 귀찮기도 하고 시험삼아 해보고 싶어서 간단하게 "네? 그게 뭐예요?"라고 일어로 말하니까 그 사람들이 당황해 하면서 가더라고요. 생긴 건 완전 한국사람인데 일어로 말해서 놀랐을 거예요.:D;;;
Commented by 기린 at 2009/04/29 18:01
두리미님 안녕하세요>_< 저도 오만년만의 포스팅이었어요! ㅋㅋ
저 요새 일어 배우고 싶어서 막 히라카나 가타가나 외우는 중인데 의지대로 안 된다능;;ㅠ 혼자서 일어 배우려면 어찌 해야 하나요? 흑흑 비법을 전수해 주소서=ㅁ=
Commented at 2009/05/02 18:07
비공개 덧글입니다.
Commented by 기린 at 2009/05/03 06:27
아..그런 슬픈일이; 전 전문적으로 일어를 배우겠다!.................기 보다는; 그냥 일상회화를 하고 싶어서요..흠..그것도 열공모드 돌입을 해야 되는거겠죠?ㅠ 옆에 가르쳐 줄 사람이나 학원을 다녀야 겠군요ㅠ
Commented at 2009/08/21 03:17
비공개 덧글입니다.
Commented by 기린 at 2009/10/04 20:52
이제 소식들을 수 없는건가 했는데+_+ 종종 들려서 소식 전할게요! 잘 지내시죠?+_+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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